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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 욕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은 건

"안경 벗어, 그게 더 예뻐." 어디 유교의 조오선 땅에서 장유유서를 무시하는 발언인가!라는 마음보다는 얜 뭔데 이런 말을 할까 싶었다. "안경을 예쁨 받겠다고 쓰고 벗는 건 아니지." 가까운데 매칭이 되었길래 커피나 한 잔 하자며 만났다. 최근에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었고, 틴더는 친한 형들이 알려줘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말이 오가는 사이에 잔잔하게 스킨십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두어 차례 얘기했다 보니 세 번째에는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틴더로 만나면 이런 식으로 하라고 형들이 얘기하던?" "형들 욕하지 마." "아직 욕하진 않았어. 네가 지금 형들 욕 먹이는 행동을 하고 있지." 나의 거절보다도 친한 형들의 명예가 더 중요했나 보다. 이후로는 멀쩡하게 잘 대화하..

재미 보장한다했으나 전혀 재미가 없던 건

설명이 필요한 농담은 실패한 농담이라는 말이 있다. 다수에게 던지는 농담이라면 아 타율이 낮네 정도로 넘어갈 수 있지만, 둘이 하는 대화일 때 이런 실패한 농담이 발생한다면 그냥 본인이 농담을 잘 못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스스로 위트있는 편이다라고 하면, 위트 있다는 게 뭔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싶어 진다. 소위 위트가 있는 말은 시쳇말로 빵빵 터지는 느낌은 아니고, 오히려 흐르는 대화 속에서 슬며시 툭 툭 물수제비 던지듯 들어온다. 작정하고 준비하여 치는 대사 같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의적절한 농담을 섞어가며 위트 있게 말을 하려면,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은 갖춰야 한다. 아는 게 많아야 하고, 상대의 반응을 잘 읽어야 하며, 이야기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세..

모니터 시사회에 같이 간 건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님이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덕분에 까먹고 있던 기억이 잠시 생각나 적어볼까 한다. 윤여정 배우님의 필모그래피, 출연작을 보면 계춘 할망이라는 작품이 있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 계춘 할망이라는 작품에서 시작한다. 영화는 개봉 전 여러 가지 시사회를 거치기도 한다. 그중 블라인드 모니터 시사회는 개봉 전 관객의 의견과 반응을 듣는 시사회로, 시사회를 마치고 나서 관객에게 설문을 진행하는 식이다. 당시 나와 얘기하던 분은 스케줄 근무를 하는 분이었는데, 우연히 오프날에 블라인드 시사회 기회가 생겼다며 나에게 같이 가겠냐는 제안을 했다. 영화 장르를 가리지 않고 보며, 꽤나 좋아하는 편이라는 걸 얘기하다 느끼셨던 것 같다. 물론 매칭 초반에 어색한 대화를 할 때 '뭐 좋아하..

트랜스젠더냐는 질문을 들은 건

의사소통의 약 55%는 비언어적 요소, 약 40%는 반언어적 요소, 나머지 5% 정도가 언어적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메신저로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통화를 하는 것이 상대방과 소통하거나 연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용건만 간단히 세대에 문자가 더 익숙하기에 용건 없는 통화를 어색해는 편이다. 그러나 사람은 다각적이라고 통화는 어색해하면서도, 자기 전 조곤조곤 통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인 한정 관종이라 나한테 집중해주는 게 참 좋다. 상대의 시간을 온전히 뺏어야 하는 것이기에 쉽게 통화하자고는 안 해도, 음성으로 얘기하는 것은 꽤나 매력적이다. 특히, 밤의 통화. 어두운 방에서 눈 빠지게 화면 안 봐도 되니까. 그렇게 불 끄고 톡 하다가 눈 아작 나는 거라고요. 틴더 특성상 저녁~..

커플앱을 깔게 했으나 더 못 만나겠다 들은 건

두 번째 만남 때 그는 이 느낌을 놓치고 싶지 않고 내가 매우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며 만나보자 했다. 서로 알아가자라는 뜻인 줄 알고 그러자 응답했다. 웬 걸, 그게 사귀자는 말이었구나. 그는 그럼 오늘부터 1일이라하더니 커플 어플로 유명한 비트윈을 깔게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본인 생일이라며 스테이크를 구워주겠다는 명목으로 집에 초대를 받았다. 세 번째 만남이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난 나를 마중 나왔고, 함께 그의 집으로 갔다. 가족들이 모두 외출 중이라서 초대한 거라지만, 영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이가 나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저녁에 일정이 있어 식사 후 그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짧게 본 게 너무 아쉽다며 다음날 동네까지 찾아오겠다 했지만, 그날 저녁 그는 갑..

우리 무슨 사이예요 물은 건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누가 봐도 커플인데 아직 확실하게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이 'where are we?'라며 서로의 관계를 묻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우리 무슨 사이야?'라는 이런 대사를 실제로 할 일이 설마 있나 싶었는데, 설마는 역시 사람을 잡는 법이다. 첫 만남에서 그는 호감을 표시했다. 썩 싫지 않았기에 또 보자 했다. 두 번째 만남에 도리를 찾아서의 어느 파트에서도 손을 잡을만한 구석이 없는데, 손을 잡으셨더라. 영화 끝나고 이게 뭐냐 해도 놓지 않으셨다. 뭐지 싶어서 작은 공책에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아니 싸하면 그만 봐야지 과거의 나야. 다음 날에 시간 되면 보자 했는데, 시간이 안될 것 같다며 저녁 운동 끝나는 시간에 맞춰 집 근처로 찾아오셨다. 땀에 젖은 채 10분..

만우절 장난을 함께 한 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구도 좋아하지만, 4월은 만우절이 있다는 점에서 좋아한다. 작년엔 별 다른 장난을 기획하여 실행하진 않았으나 그 전까지만 해도 정성 들여 남들을 피식하며 웃게 할 만한 장난을 하곤 했다. 얘기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고, 상대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 정도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한창 페이스북이 주된 SNS였던 때였기에, 뻔한 레퍼토리지만 만우절에 맞춰 그와 '연애중' 상태를 띄웠다. 다양한 반응이 나왔고, 생각보다 진짜냐며 연락 오는 빈도가 잦아 짧은 게시 후에 만우절 속았지 빠밤~ 정도로 막을 내렸다. 게시글을 내리면서 상대가 만우절 장난 말고 진짜로 만나볼래?라고 제안했으나, 아직은 이르다며 조금만 천천히 생각해보자 하고 거절했던 걸로 기억한다. 집이 가까웠고 적당..

죽음에 대해 뻔한 소리를 들은 건

"그렇게 죽는 건 나쁜 거니까요." 그의 논지는 단순했다. 자살을 하면 나쁘기 때문에 그렇게 죽어선 안됐다. 어쩌다가 이야기 주제가 죽음으로 흘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좋게 말해 순수한 그의 생각이 부럽기까지 했다. 저런 게 건강한 생각이겠지 싶었다. 삶에서 무언가 감정이 많이 힘들었던 시기에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요새도 문득 그런 감정이 올라온다 하는 나의 이야기에 돌아온 도덕적인, 아주 뻔한 말. '부모님이 슬퍼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슬퍼하니까', '그건 옳지 않은 거니까' 그러니 자살을 해선 안 된다. 옳지 않으므로, 주변인을 위해서, '나'라는 사람은 살아가야만 하는가? 살아가며 옳은 일만 하며 살 순 없고, 세상엔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 그지없다. 자살을 생각하..

쓰리썸 제안을 받은 건

한국에 놀러 온 커플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현지인 가이드나 같이 돌아다닐 사람을 찾나보네 하고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커플인데 틴더 해도 돼?" "둘이서 같이 보고 있는 걸. 그리고 우리가 좀 독특한 걸 좋아해." "예를 들면?" "거절 해도 좋고, 오케이하면 더 좋고. 나는 바이인데 네가 맘에 들어. 내 파트너도 네가 맘에 든대. 혹시 쓰리썸 관심 있어?" 신선한 제안이긴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많은 이들의 판타지가 아니던가. 그치만 일탈 자극의 강도가 너무 갑자기 센 게 아닌가 싶었다. 여지껏 훅업에 반응도 안 해왔고, 원나잇도 안 하는데, 궁금하다고 쓰리썸에 낚인다면 잔잔한 일상 속 파도 수준이 아니라 바위를 던지는게 아닌가. "매력적으로 봐줘서 고마워. 그치만 아직은 무서워서 제안은 거..

만든 물품을 판매하려 만난 건

재밌어 보이면 일을 벌이고 봤기에, 친구와 가볍게 엽서와 스티커를 만든 적이 있다. 태양계와 광물이라는 조금은 동떨어진 주제로 제작했는데, 둘 다 예쁘게 잘 나왔다. 사활을 걸고 하지는 않아선가 재고가 아직 남아있어 이걸 어쩌지 싶은 일이긴 해도 여전히 즐거운 추억이다. 갓 인쇄된 따끈따끈한 엽서와 스티커 세트를 포장도 다 하지 않은 때였다. 블랙 코미디와 경제, 역사, 철학 등을 넘나들며 얘기하다 태양계 엽서를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는 실물을 봐보고 싶다고 했다. 아유 예 물론이죠 하고 빠르게 약속을 잡았다. '한국 여자들 다 똑같이 생겼는데 너는 그렇지 않다'는 뭐라는 거지 싶은 얘기를 들었으나, 가볍게 무시하고 저녁을 먹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쁘게도 첫 고객님이 되어주셨고, 티셔츠로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