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벗어, 그게 더 예뻐."
어디 유교의 조오선 땅에서 장유유서를 무시하는 발언인가!라는 마음보다는 얜 뭔데 이런 말을 할까 싶었다.
"안경을 예쁨 받겠다고 쓰고 벗는 건 아니지."
가까운데 매칭이 되었길래 커피나 한 잔 하자며 만났다. 최근에 동네로 이사 온 사람이었고, 틴더는 친한 형들이 알려줘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했다. 말이 오가는 사이에 잔잔하게 스킨십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두어 차례 얘기했다 보니 세 번째에는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틴더로 만나면 이런 식으로 하라고 형들이 얘기하던?"
"형들 욕하지 마."
"아직 욕하진 않았어. 네가 지금 형들 욕 먹이는 행동을 하고 있지."
나의 거절보다도 친한 형들의 명예가 더 중요했나 보다. 이후로는 멀쩡하게 잘 대화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걸 할 수 있는 건데 안 했던 거네 하고 솔찬히 괘씸했다. 공통의 관심사도 딱히 없고, 가치관이 맞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알아가고 배려하려는 모습이 보이지도 않고, 친구로도 지인으로도 어렵겠다 싶었다. 어정쩡한 커피 타임을 마치니 식사 시간 즈음이었다.
"우리 집 근처인데 집으로 갈래?"
"내가 너의 뭘 믿고 거길 따라가겠니. 그냥 슬슬 일어나자."
이후로는 더 얘기를 했던가 안 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데, '형들 욕하지 마'했던 부분이 인상 깊었다. 결국엔 사람을 대하는 건데 틴더로 만나면 뭐, 갑자기 모든 예절을 허물어도 되는 것인가. 아마 어딘가에선 멀쩡히 잘 사람 대하는 분이었겠지 싶다. 나이와 성별을 떠나 사람을 만날 땐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다시금 공고히 알게 된 경험이었다.
'김씨잡변 > 틴더_사용보고서_ver.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으니 그제야 행동을 멈춘 건 (0) | 2021.07.06 |
---|---|
지금은 못 만나요라고 말한 건 (0) | 2021.06.16 |
재미 보장한다했으나 전혀 재미가 없던 건 (0) | 2021.05.06 |
모니터 시사회에 같이 간 건 (0) | 2021.04.22 |
트랜스젠더냐는 질문을 들은 건 (0) | 2021.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