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 쓰는 사람을 만난 건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여 따로 써보기로 하였다. 남을 사칭하는 것은 범죄인데, 가명은 물론 사진도 도용한 사진이었다고 말해주는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른 어플에서 카카오톡으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별 이상한 것은 없었다. 재밌는 분이네 하는 차에 섹슈얼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시각적인 게 중요한 사람이라 외모가 맘에 들고 하면 고려는 해보겠다 하니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고 하였다. 전형적인 미남스타일이 좋다는 나의 대답에 '기생오라비 같은 건 싫어?' 하며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 사진을 보내주더니 이내 곧 지웠다.
"반반하게 생기긴 하셨네요."
"그럼 같이 잘 수 있어?"
"뭐 사람이 괜찮다면 고려는 해볼 정도?"
"그게 뭐야."
"말하는 건 지키는 편이라, 허투루 긍정하진 않아요."
이러면 흥분되지 않냐며 겁도 없이 그는 자신의 몸 사진을 보냈다. 아니 남의 성기 사진으로 흥분되는 경우가 있긴 한가? 포르노에 뇌가 절여진 건 아닌가 싶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나의 성기 사진으로 흥분하진 않는다고 정정도 해주고 어디까지 하나 냅둬보았다. 대체 그의 뭘 믿고 나를 까보이라는 건지 싶었다.
스스로가 노출증이 있다며 다른 건 안 해도 되니까 그냥 자신이 자위하는 걸 봐주기만 하면 안 되냐고 했고, 설마 하며 수락했다. 페이스톡이 왔다. 아무런 것도 비치지 않는 나의 화면과 달리 그는 열심히 그의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대충 휴대폰을 던져놓고 생각에 잠겼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 시간 남짓 이야기한 사람에게 개인 번호를 밝히는 것은 물론, 네가 너무 섹시해서 못 참겠다고 자위를 하는 것도 모자라, 공공적인 곳에서 소위 은밀한 부위라고 불리는 성기를 노출하여 나에게 보여줘도 되는 걸까? 저런 애들도 멀쩡하게 이름 들어본 곳에 잘 취업해서 사회생활 잘만하는데 대체 난 뭐가 부족해서 취업을 못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 때쯤 상대가 사정을 했다.
볼 일은 없겠거니 싶어 대충 이야기를 끊고 잠에 들었다. 예상대로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고, 반반했지만 정신머리가 저래서야 안타깝네 하며 딱히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채팅 목록을 정리하다가 그의 이름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 '와 이름이 바뀌었다'라고 아무 생각 없이 톡을 보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없이. 그날은 유독 지치고 피곤한 날이었기에 사고가 마비되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 사실 섹스 중독이야...."
어쩌라는 거지 싶은 답장이 왔다. 그는 구구절절 이러저러해서 지금도 흥분되었고, 네가 허락만 한다면 노예가 되어줄게 하며 얘기했다. 이름도 가짜였고, 사진도 본인이 아니라고 했다. 다른 사람의 사진을 자기라고 얘기하려고 저장해놓고 있다니. 사진 도용이라. 이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그럼 그 모든 게 거짓일 텐데, 본인의 뭘 믿고 내가 몸을 섞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에게 섹스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자발적 노예 선언을 하는 것일까?
죽고 싶기도 했고, 죽기밖에 더하겠나 싶은 생각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굉장한 일을 저질렀다. 노예로 말 잘 들을 거면 그럼 지금 보자고, 짧게밖에 보지 못할 거지만 그렇게라도 보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근데 나 외모 많이 보는데?"
"못생기진 않았어."
"내 눈을 모르고 하는 말인 거 같은데."
"키스할 정도는 되니 걱정 말아."
"그건 내가 정하는 거지."
택시를 타고 온다던 그는 값싼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잠깐이지만 내가 그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노예는 무슨, 웃음이 나왔다. 마주한 그는 꽤 실망스러운 외모였고, 이런 정도의 사람도 '나 정도면 괜찮지'의 늪에 있구나 하는 사실이 비극이라 생각했다. 뭘 믿고 그렇게 나댄 거지 이 사람은.
나의 말에 복종하겠다던 그는 역시나 말을 듣지 않았다. 자꾸 어두운 델 가자고 했고, 자기 흥분되었는데 봐주면 안 되겠냐 했으며, 한 번만 만져달라는 등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글쎄, 진짜 말이라도 잘 들었으면 고려를 해보았을 텐데. 그 당시의 나는 뭐라도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필요했으니까.
"복종한다면서 지금 내 말 들은 게 뭐라도 있나?"
"아냐 말 잘 들을게."
"이미 세 번 이상 말 안 들었으니 기회는 날아갔어. 이제 볼 일 없겠네, 집에 가."
마지막인 거면 정말 한 번만 만져주면 안 되냐, 키스는 안 되냐 하며 질척이던 그를 내버려 둔 채 "응 안돼, 잘 가"하고 뒤돌아 갔다. 만날 때 명함이라도 가져오라 할 걸, 안전망을 만들어 두지도 않다니 참 무모한 짓이긴 했다.
'가볍게 보는 거라도 나한테만 반응하는 사람 아니면 안 돼'했을 때 '너한테만 그런다'라고 한 그는 대체 나의 어디에 반응했던 걸까? 그저 잘 수 있는 기회다 하고 달려든 생각 없는 대답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게 답이겠지 싶다. 성행위란 무엇일까. 섹스라는 게 정말 무얼까.
사회 속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지만, 그들의 이면을 쓸데없이 알게 되는 건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그런 이면은 제발 신뢰가 적당히 쌓인 가까운 사이에서나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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