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에 한 번 정도는 좋았던 일도 써야 하지 않겠나 하며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주로 이상한 기억 사이에 묻혀있긴 해도 좋은 사람 혹은 평범한 사람과의 만남이 없지는 않았다. 평범이란 무엇인가에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 단어의 정의는 중요하므로 나의 상식이 꼭 세간의 상식과 같다고 할 순 없겠지만, 여기서의 평범은 나의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자.
그는 평범한, 다시 말하자면 무난한 사람이었다. 나이 차이도 적당히, 대화하는 것도 거슬리는 것 없이 적당히, 생긴 것도 적당히, 행동도 적당한 배려심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특별히 불꽃이 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사람이구나 정도의 감정. 처음 한 두 번의 만남은 왜 이렇게 잘해주지였다면 세 번째에는 확실했다. 으레 썸씽의 ㅅ도 겪어본 적도 없는 연애 무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도 느낄 정도로 그는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네 번째 만남이었나, 헤어질 즈음에 분위기를 잡고 그는 조심스레 나에게 물었다. 혹시 제대로 만날 생각이 있냐고. 감정이 급발진하여 나에게도 같은 감정을 강요한 사람을 직전에 경험한 나로선, 새삼 평범한 그의 고백이 신선했다. 좋은 사람인 건 알겠지만 글쎄, 내가 지금 연애를 할 상황일까? 하며 스스로에게 반문했을 때, 답은 나와있었다.
나는 아직 연애를 할 마음 상태가 아니었다. 취업전선에 막 뛰어든 참이었고, 결과 때문에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다루기엔 아직 미숙했다. 섣불리 삶에 다른 변수를 들이기엔 적합한 시점이 아니었다. 아무 감정이 없으니 마음을 열려고 노력해야할텐데, 그런 에너지도 여유도 없었다. 짧은 정적 후의 지긋한 눈 맞춤. 나는 그에게 '지금은 못 만나요'라고 정직하게 얘기했다. 나는 이 상태로 누굴 만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나의 의견을 그는 그대로 수용해주었다. 대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마지막 만남에서는 대충 사귀는 것 같은 제대로 된 데이트를 했다. 맛있는 걸 먹고, 향긋한 커피를 마시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얘기했다. 좋아한다는 수준의 감정 없이, 호감의 수준이라도 어느 선까지의 스킨십은 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마지막은 그저 뻔한 클리셰를 보여주며 매듭지었다. 있는 감정 없는 감정 다 한껏 끌어올려 표현했고,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했다. 진지한 연인을 원하는 그와 편하게 만날 친구를 찾는 나는 계속될 수 없는 연이었다. 헤어지기 위해 인사를 할 때, 그는 다시 물었다.
"이제 오늘 보고 더 못 보는 거지?"
"네, 여기서 마무리인 거예요."
"정말로?"
"네, 정말로."
"...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봐도 돼?"
슬쩍 가까이 다가가니 그는 생사를 오가는 전쟁 속에서 함께 살아남은 전우마냥 꽉 포옹하였다. 마지막 포옹을 살며시 풀어내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마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먼저 갈 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잘 지내요."
"... 응, 잘 지내."
아마 가볍게 그냥 틴더서 만났던 어떤 애 정도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지금쯤 까먹었을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아주 미미하게 스쳐 지나간 어떤 사람.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면 하는 과욕을 부려본다. 동시에 어디선가 잘 살고 계시겠지 하는 기도를 살며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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