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꺾이는 순간부터 시들어간다. 선물로 주고받는 꽃은 마지막 생명을 불태우고 있어서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에 예쁜 것을 좋아하다 보니 꽃 선물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받아본 적은 손에 꼽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과 얘기를 하다 보면 꽃 선물을 참 좋아하는데, 받은 적이 별로 없다는 얘기를 종종 하곤 했다.
"뭘 그렇게 봐?"
"꽃 자판기가 있더라고, 예쁘다 싶어서."
"꽃 좋아해?"
"응, 근데 특별한 날 말고 받아본 적이 없어서 아쉬워."
"애인이 준 적 없어?"
"애인이 있었냐부터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사실인걸. 내일은 꽃 사볼까."
"사지 마, 내가 사줄게. 지금은 달라고 해서 사주는 거 같으니까, 다음에."
잠깐이나마 설레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해준 사람도, 애인이 생기면 꽃을 자주 주는 편이라던 사람들도, 실제로 꽃을 준 적은 없다. 내게 성적 호감을 표시하던 이들 중, '나중에 내가 사줄게'하던 그 말을 지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좋아한다는 꽃 한 번을 못 사줬네 하면서 차는 주제에 울던 첫 애인도, 그저 말 뿐이었다. 외려 지금 지인으로 잘 지내는 분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며 장미를 건네주어 기쁘게 받은 적은 있다.
꽃으로 대표되는 작은 선물이 별거겠는가. 상대가 좋아한다니까 기뻐했으면 하는 그 마음이 예쁘고 감사하고 설레는 것이지. 꽃이 아니더라도 상대가 좋아하는 걸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고, 경제적으로도 가능하다면 말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기자. 행동이든 물건이든 표현하지 않으면 우리의 감정은 허공에 떠도는 공기가 될 뿐이다.
말한 바를 지킨다는 것은 가히 감동스러운 일이다. 특히 나처럼 스스로가 말한 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인 경우, 그 감동은 남들보다 크게 다가온다. 본인이 원한 목표를 이뤄내는 것이든, 상대와 약속을 지키는 것이든, 뱉은 이야기를 지키면 인상 깊게 보는 편이다. 이 사람은 나와 얘기한 것을 지키려 하는 사람이구나, 스스로 얘기한 것을 지키려 하는 사람이구나 하며, 그의 말이 가볍게 날리는 공수표가 아니라는 신뢰가 생긴다.
나중에 사줄게 하던 그 꽃들은 과연 받을 수 있는 꽃이긴 했을까? 주지도 않을 거면서 내가 꽃 사러 간다면 왜 말린 건지. 살다 보면 공수표를 흩뿌리게도 된다지만, 사업이나 경제활동으로서 영업하는 시간이 아니라면, 약속엔 조금 더 신중하고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이 나에겐 매력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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