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도 가깝고 그냥저냥 나쁘지 않았기에 만나던 와중에, '애인'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우리 애인 사이예요?!"
전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 그분의 인스타그램에는 떡하니 박혀있는 '싱글' 표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필에 왜 굳이 싱글을 쓰지 라는 생각이 더 컸지만, 본인 프로필에 뭐를 쓰든 표현의 자유니까 그렇구나 원래 되게 티 내는 타입인가 보네하고 있었는데, '애인'이라니.
너무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서 이게 뭐지 하며 정정을 할 타이밍을 놓쳤다. 특별히 만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는데, 이런 게 애인 사이인가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며 더더욱 이상했다. 대체 그는 왜 나를 애인이라 칭하는가?
그러던 어느 날, 싸함이 스쳐 지나갔다. 제주도에 다녀온 그가 사온 선물을 받은 어떤 다른 여성분. 이게 뭘까하며 대충 훑어보는데, 그 여성분은 그와 함께 주말마다 데이트 명소를 다녀오고, 크고 작은 선물들을 받았더라. 적당히 애인이라고 칭하고 나랑 얘기를 하고, 다른 사람과 잘 되기 위해서 밑밥을 열심히 까는 중이었던 것이다. 굳이 왜? 싶었지만 아마 잘 안되면 그냥 나를 애인으로 하자는 식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그를 좋아하기라도 했다면 참 좋았으련만.
약속이 갑자기 파투 나고 연락이 잘 안 되는 어느 날,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에게 만나자는 이야기를 위해 전화를 했다. 역시나 받지 않았고, 성격상 그래도 이런 건은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걸 어떻게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중에, 조금 또라이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제일 빠른 방법이 생각났다.
다음날 오전 인스타그램에서 해당 여성분에게 디렉트 메시지를 보내니, 바로 그에게서 전화가 오더라. ㅇㅇㅇ는 건드리지 마라고 했던가 뭐랬던가. 대충 기억나는 당시의 메시지 내용은 '혹시 ㅇㅇㅇ씨 아시나요?'였다.
"제가 굳이 왜요? 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여요? 저한테 하나도 이득 될 일이 없는데요."
이런 일은 얼굴 보고 제대로 정리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간 오래 걸릴 거 아니니까 제대로 만나서 얘기하자라는 식의 나의 의견을 전달하고 만나는 일정을 잡아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별 거지 같은 말을 하는데, 서로 쌓은 추억도 없으니 비겁한 소리 하지 말고 정리할 건 정리하고 사는 게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정리를 하고 집에 가서는 내가 이렇게 보는 눈이 정말 없구나, 정정할 건 빨리 정정해야 했는데 하며 명함 화형식을 했다. 불장난하던 그 날엔 계속 이런 안 좋은 사람만 만나려나 하는 악몽을 작게 꾸었지만, 이후로는 잊고 지냈다. 아마 여전히 그렇게 비겁하게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지.
애인이라고 칭하면서 다른 곳에선 싱글인 척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있을 줄이야! 심지어 같이 팔로우가 된 상태인데도 고칠 생각이 없었다는 점에서 참 대단하다 싶었다. 사람을 몇 거치고 나면 그래도 어느 정도 보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작은 마음으로 하나의 경험이 쌓였음에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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