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잡변 62

어려운 말을 한다는 소리를 들은 건

평소에 말을 어렵게 하는 편이냐 하면,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대에 맞춰 어휘를 골라가며 사용하는 편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어휘를 쓰고, 어느 정도의 진중함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지 알 수 있다. 상대의 결에 맞춰서 이야기를 주고받아야 자연스럽게 말이 이어지기에, 가벼운 얘깃거리를 던지며 어떤 느낌의 말을 구사하는 지를 파악한다. 이렇게 파악을 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일 수 있는데, 적어도 얘기하는 동안은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욕심이 아닐까. 사람들의 어휘 수준은 참 다양하고 주로 쉬운 단어로 얘기를 하지만 가끔 한자어나 자주 쓰이지 않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낯선 단어를 마주했을 때, 얼마나 많은 글을 다양하게 접해보았는가에 따라 상대가 보..

패완얼을 강조하는 사람을 만난 건

"당이 땡긴다는 건 사실, 소장이 보내는 신호예요"라고 알려준 그는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었다. 아마 지금쯤은 거의 과정을 다 마치고 전문의가 되어 있지 않을까? 별 다른 특징은 기억나지 않는데, 외모 자존감이 낮고, 돈을 참 아무렇지 않게 쓰시는 분이었다. 옷을 살 때가 되었다며, 합정에 있는 한 남성복 매장에 함께 가자 하여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충분히 대중교통을 타고 다닐만한 거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불편하다며 택시를 고집했다. 택시 타는 게 그렇게 편하지 않은 BMW(Bus, Metro, Walk) 애용자로서 대단하다고 느꼈다. 합정역 근처 신사복 가게에 도착하여 옷을 입어보고 둘러보는데, 그는 계속하여 '어차피 패완얼이잖아요'라는 이야기를 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라니. 개인적..

6시간이 넘게 통화를 한 건

새벽 감성이었을까,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본명이 기억나진 않고, 운영하는 카페의 상호로 사용 중인 영어 이름만 남아있다. 막 오픈을 했을 때였으니까, 지금은 거의 4, 5년쯤 되었으려나? 인스타그램에 검색해보니 있는 거 같긴 하던데 그 카페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연락을 좀 하다가 카카오톡으로 넘어왔던 날이었는지, 카톡으로 꽤 얘기를 했던 후인지 기억은 많이 희미해졌는데, 그날은 어째선지 통화를 했다. 카톡으로 계속 얘기하니 눈이 아프다는 뻔한 이유와 이대로 잠들긴 아까우니 조금만 더 입 털면서 떠들다 잡시다 였는데, 새벽 2시쯤에 시작한 전화는 5시쯤 동이 튼다 소리를 지나, 8시가 되어서 아 그래도 하루를 이제 시작해야죠 하면서 끝났다. 통화는 용건만 간단히에 가깝고, 전화보단 만나는 걸 선호해..

껍데기뿐인 사람을 만난 건

누군가의 기억에 좋게 기억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오랜만에 오는 연락은 주로 발그레 미소 지으며 받지만, 상대에 따라 표정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연락은 하고 싶을 때만 하다 잠수 타고, 2년도 더 지나 '연말인데 잘 지내고 계시나요?' 하며 물 위로 슬며시 떠오르는 경우엔 입꼬리가 아니라 눈썹이 올라갈 수밖에. '아, 네'하고 끝내버리니 상대는 자길 그래도 기억하고 있냐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몇 차례의 질문이 오가고, 얘기하다 어느 날엔가 급 만났던 사람이란게 기억났다. 한 번인가 두 번밖에 보지 않은 사람에게 연락한다는 게 재밌었다. 뭐가 그렇게 인상이 깊어서? 그의 답변은 몸매를 잊을 수가 없다는데, 그렇다고 2년도 더 넘어서 연락을 하다니 주변에 그렇게 여자가 없나 싶었다. 그는 파트너 ..

얼빠인 사람을 만난 건

사람마다 본인의 취향의 외모가 있다. 흔히들 콩깍지가 껴서 좋아하는 외형 말고, 이상형이라고 생각해놓은 외모가 있을 것이다. 우연찮게도 상대의 이상에 맞아 든 적이 몇 번 있다. 완전히 이상에 적합한 경우부터 꽤 많이 가깝다고 하는 때까지. 이상형이 주로 특정 신체 부위라든가 두루뭉술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외모 이상형 존에 스트라이크를 맞췄는데 상대가 소위 말하는 외모에 많은 비중을 두는 얼빠인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성격도 가치관도 전혀 맞지 않아서 첫 만남부터 삐끄덕거리는데, 외모가 너무 이상형이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해주셨다. 서로 사는 곳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넘게 걸린다면 안 만난다는 나의 말에도, 본인이 올 테니 만나만 달라고 했다. 성격이 너무 안 맞는 거 아는데, 꿈..

상처 줄까 봐 라는 소리를 들은 건

그런 자신감들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아무 감정 없던 사람에게 '나 좋아했으면 미안해' 들은 건에서도 한 번 언급했지만, '네가 상처 받을까 봐' 같은 소리를 들으면 어이가 없고 어안이 벙벙해진다. 눈이 높다고 한 내 얘기는 어디다 갖다 팔아먹었는가. 진지한 만남으로, 다시 말해 '연인'관계를 성립했던 사람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여태껏 살아오면서 로맨틱 러브로서 '좋아한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 다르게 왔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남들이 묘사하는 그런 감정으로는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고, 좋은 데 가면 생각나고, 맛있는 거 먹으면 같이 오고 싶다 등으로 묘사되는 그런 감정 말이다. 스스로의 기준이 높은 만큼, 남을 보는 기준도 높아서 그걸 넘어서 설레 본..

보험 팔이를 만난 건

어떤 직업의 인상은 좋은 사람 여럿이 아니라 나쁜 사람 하나로 바뀌기도 한다. 평소라면 쓰지 않을 '보험 팔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렇다. AZ금융의 그 친구는 자산관리자가 아니라 딱 보험 팔이였다. 그 친구를 처음부터 나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으나, 고객을 돈으로 보는 주제에 관리를 참 못하네라는 생각은 했다. 첫 만남부터 그리 인상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일에 굉장히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즉 금융 설명에 엄청나게 열을 올려서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마음으로 계속 들어보았다. 타이밍이 좋기도 했다. 여전히 보험비를 부모님이 내주고 있다는 사실에 께름측해 하던 즘이었으니. 음악을 하다, 요리사로, 그리고 보험 팔이로 전직을 한 것인데, 뭐 다치고 아프고 하는 건 내 알 바가 ..

10년 전 사진을 걸어 놓은 사람을 만난 건

사진을 올려놓아야 하는 어플의 경우 종종 프사기를 당할 수 있다. 프사기(프로필+사기)란 프로필 사진과 실물이 다른 경우를 일컫는 말로, 소셜 미디어 계정에 본인의 사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아지며 잘 쓰이는 단어이다. 소개팅 어플은 대부분 사진을 요구하기에 프사기를 당할 확률도 높다. 앱을 통해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나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고 못 알아볼 정도로 보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프사기가 그렇게 흔한 일인 줄 몰랐다.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여자의 프사기가 보정 때문이라면, 남자의 프사기는 보정은 물론이고 세월이나 순간포착의 경우가 많았다. 보정만 있는 경우 그래도 아 대충 이런 거 보정했구나 하고 넘어갈 수준이지만, 찰나의 기적은 얘기가 다르다. 정말 알아볼 수가 없다. 그중 압권은 바로 ..

차단됐나 전화하는 사람을 만난 건

계정 차단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보니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연락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적당히 정중하게 '네, 그러시구나, 가던 길 가세요'한다. 보통은 얌전히 사라지거나, 왜 이렇게 바뀌었냐고 반응하거나,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냐고 화를 내거나, 또는 집착적으로 계속 연락을 시도한다. 아무리 차단을 잘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지만, 집착해서 주기적으로 떠오르는 경우 차단이 그나마 답이라고 생각했다. '연락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하고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고 차단을 걸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차단 목록에서도 삭제하는 식인데, 이 사람은 좀 달랐다. 거의 매년 주기적으로 마치 자신이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마냥 연락을 해 오던 사람이 있었다. 차단을 하고 풀면 그걸 또 어떻게 기깔나게 알았는..

사진 도용하는 사람을 만난 건

가명 쓰는 사람을 만난 건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결이 조금 다르다고 생각하여 따로 써보기로 하였다. 남을 사칭하는 것은 범죄인데, 가명은 물론 사진도 도용한 사진이었다고 말해주는 그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다른 어플에서 카카오톡으로 넘어왔을 때만 해도 별 이상한 것은 없었다. 재밌는 분이네 하는 차에 섹슈얼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시각적인 게 중요한 사람이라 외모가 맘에 들고 하면 고려는 해보겠다 하니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고 하였다. 전형적인 미남스타일이 좋다는 나의 대답에 '기생오라비 같은 건 싫어?' 하며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 사진을 보내주더니 이내 곧 지웠다. "반반하게 생기긴 하셨네요." "그럼 같이 잘 수 있어?" "뭐 사람이 괜찮다면 고려는 해볼 정도?" "그게 뭐야."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