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본인의 취향의 외모가 있다. 흔히들 콩깍지가 껴서 좋아하는 외형 말고, 이상형이라고 생각해놓은 외모가 있을 것이다. 우연찮게도 상대의 이상에 맞아 든 적이 몇 번 있다. 완전히 이상에 적합한 경우부터 꽤 많이 가깝다고 하는 때까지. 이상형이 주로 특정 신체 부위라든가 두루뭉술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의 외모 이상형 존에 스트라이크를 맞췄는데 상대가 소위 말하는 외모에 많은 비중을 두는 얼빠인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성격도 가치관도 전혀 맞지 않아서 첫 만남부터 삐끄덕거리는데, 외모가 너무 이상형이라는 이야기를 대놓고 해주셨다. 서로 사는 곳이 대중교통으로 한 시간 반 넘게 걸린다면 안 만난다는 나의 말에도, 본인이 올 테니 만나만 달라고 했다. 성격이 너무 안 맞는 거 아는데, 꿈꿔오던 외모의 사람이라 맘 껏 이용해 먹어도 화가 나지 않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겨울이면 시즌권을 끊어 보드를 탈만큼 좋아하고, 강사 자격증도 있어서 부업도 한다던 그 사람은 얼마 후 자신을 차단하라고 했다. 볼 때면 계속 자자고 덤빌 것 같다고. 진짜 안 맞는 거 알지만 외모가 취향이라 계속 보고 싶고, 보면 하고 싶은데, 너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그냥 차단을 하라고. 굳이 그런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았고, 연락을 안 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시간이 꽤 지난 어느 날, 왜 차단 안 했냐며 여전히 잘 생각 없냐 연락이 왔고, 거절을 표하니 상대가 차단을 하더라.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다. 예쁘게 말을 하는 것은 물론, 나에게 맞춰주려 하고,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뒷구르기를 하면서 봐도 나에게 호감이 있는 분이었다. 서로 몇 번 만난 후 사귀자고 고백을 받긴 했는데, 묘하게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고백을 일단 보류하겠다 하니 상대는 울음을 터트렸다. 당황스럽고 눈앞에서 우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걸리지만, 싸한 촉을 그냥 넘어갈 순 없어서 의견을 얘기를 했더니, 그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 내가 들을 수밖에 없지 않냐며 울면서 말을 이었다. 몇 번 더 만나면서 자잘하게 잘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만나기 전엔 날카롭게 얘기하다가도 얼굴만 보면 화가 풀려버린다는 이야길 했다.
외모만으로 화가 풀리고, 이용해 먹는 게 괜찮다니... 그렇게 예쁘다 할 외모도 아닌데 저런 반응을 받아보니 여러 생각 거리가 다가왔다. 외모가 뛰어나면 무의식 중에 긍정적인 인식을 받게 된다는 데, 그런 작은 판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자연에서 신체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중요한데, 사회에서 과연 외모는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걸까? 우리의 이기적 유전자가 개체 번식을 위해 유리한 유전자를 외모로만 판단하는 것이고, 사회적 유전자인 밈은 상대적으로 영향력이 약한 것일까? 사람마다 그 비율이 다른 것일까 아니면 이것도 사회적 학습의 힘인 걸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모두 지나간 사람이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커가는 걸 보니 재미있다. 생에 언제 저런 '보기만 해도 좋아'의 대사를 다시 들을 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기 좋은 주제를 던져준 그들에게 감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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