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한 얘기를 털어놓기 앞서 간단하게 취업 준비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니 참 이상하더라. 뭐 그리 취업하는 게 준비가 필요한 일이라고, 라고 생각한 과거의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괜히 이런 단어가 생긴 게 아닌 것 같다. 일반적으로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이라는 신분이 되는 것은 참 거지같은 일인데, 크게 세 가지로 거지같다.
1. 만사에 예민해진다.
2. 돈이 없다.
3. 자존감이 낮아진다.
세 가지라고 말했지만, 따지고 보자면 별로인 점은 무궁무진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주변의 인정 대신 동정과 걱정을 받아서 그렇지, 나름 재밌게 잘 지냈다. 앞서 말한 세 가지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로, 만사에 예민해진다. 적을 둘 곳이 없거나 없어질 예정으로 불안이 몸을 휩쓸어서 건강도 나빠진다. 눈 감아봐 이게 니 미래다 드립이 너무 본인 얘기 같아진다. 뭐 하나 물건 떨어질때마다 믿지도 않던 미신을 떠올린다. 아, 혹시 떨어지는 거 아니야? 물론 떨어질거다. 확률상 떨어지는 쪽이 더 높은데 참 사람이란 간사하게도 지원서 쓸때마다 괜히 기대한다. 희망고문이 제일 아픈 걸 모르는 마냥 기대하고 실망하고의 연속이고, 점차 사람 마음이 좁아지며 만사에 예민해진다.
둘째로, 돈이 없다. 이건 아마 집안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그렇다. 곳간에서 인심 나온다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현대인의 곳간=통장 잔고 혹은 자본 현황이 풍족할수록 사람 여유가 달라진다. 돈이 없어서 1번이 강화된다. 돈이 없을때면 마음에 여유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운 좋게도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가며 취업준비를 할 필요가 없었지만,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면 취준기간이 이따위로 길어질리 없었을 것이다.
셋째로, 자존감이 낮아진다. 거듭된 거절로 나새끼는 대체 어떤 존재길래 싶어진다. 원래도 그렇게 자존감이 높은 편이 아니었지만 소위 말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다른 사람들의 응원으로 '나는 잘 될거야', '어떻게든 잘 풀릴거야'의 힘을 믿으며 근근히 살아왔는데, 이야 이게 웬 걸. 바닥을 마주한 줄 알았던 자존감은 더 밑으로도 떨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지하에도 얼마든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이게 정신적인 것에도 적용될 줄은 몰랐다. 새삼스럽게 자존감의 형성에는 주변인의 영향이 크다는 것도 다시 깨달았다.
단순히 나열했지만, 이보다 더 복잡하고 세심한 감정들이 얽혀서 이 시점을 형성한다. 전반적으로 불안과 초조가 주를 이루고, 삶이란 무엇인가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인문학적인 생각에 탐닉하기 좋은 시절이다. 취업을 준비한다니! 어렸을 때 창업 준비, 이직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취업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부모님 세대는 취업이 잘 되던 세대였기에 그랬던 걸까? 취업 준비라는 단어가 만연하게 된 것에는 아마 사회적인 흐름이 뒷받침 되지 않았나 싶다.
누군가는 갑작스런 허무감에 휩싸이고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드디어 끝냈다는 승리감에 심취해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제는 더이상 못하겠다 포기할 수도 있다. 취준생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가려진 삶은 개인의 정신 건강을 흔든다. 이건 그냥 그러했던 소소한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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