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녀 뜻 알아?"
그는 뜬금없이 베이글녀 뜻을 아냐고 했다. 얘기가 끊긴지도 며칠인데, 밑도 끝도 없이 온 카톡이었다. 원래 단어 자체도 별로 좋아하는 합성어는 아니기에 살짝 눈썹이 꿈틀거렸다. 상대는 모니터 너머의 이런 썩은 표정을 보지 못하니 아, 문자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메시지로는 'ㅋㅋㅋㅋ'라면서 알고 있는 뜻을 말했다.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인 여자 아니에요?' 갑작기 대화가 시작됐기에 그래도 호기심이 생겼다, 무슨 얘기를 하려 그러지?
"배가 이래서 글러 먹은 녀 아님?"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얘길 하는 걸까? 저기서의 '녀'는 누구이며, 사람 배를 가지고 뭐라 할 수 있는 게 있는가. '이렇다'는 건 뭘까. 며칠만에 이건 뭔 소리지. 왜 나한테 말을 거는 걸까? 혼돈의 카오스를 느끼며 당황하는 티를 돈독하게 보여주는 답장을 보냈다.
"??? 그게 뭐죠?"
예상못한 반응인지 그는 찌푸린 표정의 이모티콘 하나를 떨렁 보낸다. 뭐하자는 건지.
"진짜 무슨 맥락인가 해서 그런 겁니다. 왜 물어본 건지 어디서 그런 게 나왔는지 다 모르겠네요..."
또 한 번의 어이없다는 듯한 이모티콘. 어이가 탈출한 건 나인데, 왜 당신이 그러나 싶었다. 돌아온 답은 'Ok' 뭐 어쩌라는 걸까 가만히 있으니 말을 잇는다.
"니 배가 그렇게 나와서 글러먹었다고 장난치는 건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이해도 못하고 받아주지도 못하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건 농담의 질이 저급이라서 그런 것이고, 이해했을 지언정 저런 농담을 굳이 받아줄 이유가 없다.
"네. 별로 좋은 농담도 아닌 듯."
이 말의 어떤 점이 좋지 않은지 얘기하며 대화를 이으려 보니,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말한 들, 들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만들어준 사람이니, 이런 걸 얘기해봤자 기운만 빠질 것 같았다. 단순히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그는 나를 그의 아랫사람인마냥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언사가 종종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저런 농담을 주고받을 만한 사이도 아니었고, 설사 친하더라도 '글러 먹다'라는 표현을 누군가에게 쓴다는 건 실례인데, 이러저러한 이유와 그 전에 엮였던 일들이 떠올라 기분이 슬며시 나빠졌다. 누군 막말 못하는 줄 아나...
'당신이 그 말을 할 처지는 아닐 텐데'라고 같은 급의 생각이 떠올라 스스로에게 질겁했다. 이놈의 외모지상주의 탈피하려는데도 참 어렵다.
그 사람은 대체 무슨 의도로 저런 농담을 했던 것일까? 나를 비하하는 농담에 '와 정말 재밌는 줄임말이네요'라고 얘기라도 해줄 줄 알았던 것일까? 저런 농담에 공감하고 웃는 사람이 있긴 한 걸까? 도통 알 수가 없다. 적당한 반응을 찾지 못한 채,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거기서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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