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잡변/틴더_사용보고서_ver.0.7

첫 연애 (비슷한 것을) 한 건

소시민김씨 2021. 1. 13.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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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사귈 수 있느냐는 물음은 앱의 본질을 흐리는 질문이다. 데이팅 앱은 사람을 사귀라고 만든 어플이다. 훅업 하고 원나잇 하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본질은 사람을 만나고 사귀라(관계를 맺어가라)는 어플이다. 틴더의 좋은 점은 나랑 접점이 없는 분야나 혹은 생각지도 못한 분야의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용 초기에는 IT분야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가장 마지막 사용 시기 때 즘에는 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생각지 못했던 분야의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아주 기본적이지만 동시에 꽤나 고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요구한다. 무수한 이상한 사람 사이에서, 친구로든 애인으로든 관계를 지속하고 사귈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순히 관심사가 크게 겹치지 않을 뿐 괜찮은 사람인 건지, 그냥 저 새끼가 쓰레기인 건지 판단하는 것은 그 미묘한 일상 대화에서 일어난다.

 사람에게 관심이 적고, 외부 활동을 잘 하지 않는 편이기에 연애 시장에 매물로서 나가는 경험은 신선했다. 연애 시장보다 육욕의 장에 가까운 플랫폼이긴 해도 3% 정도는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먼 희망의 등불 같은 마음으로 매칭을 했던 것 같다. 왼쪽 오른쪽 쉽게 넘기는 UI와 갑자기 뜨는 매칭 팝업은 꽤 자극적이고 중독되기 좋은 UX이다. 그래서 틴더 좀비가 쉽게 되는 것 같다.

 수없이 '으 뭐야' 하던 중 처음으로 연애 (비슷한) 것을 하게 되었다. 비슷한 이라고 하는 이유는 내가 상대를 엄청나게 좋아한다든가 하지 않았고, 만나는 기간 동안 실제 얼굴을 본 게 10번이 채 안되기 때문이다. 상대는 사병인 군인이었고, 캐나다 영주권을 따려고 하는 친구였기에 제대 후에는 캐나다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헤어짐이 예정되어 있는 만남이라서 시작했다. 그 사이에 마음이 싹트고 한다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보지 하는 심정으로, 남들 그 좋다고 난리 치는 연애 놀음을 한 번 해보자는 불순한 시작이었다.

 6개월정도 잘 만났었고, 상대가 마음이 식었다며 갑작스럽지만 원만하게 헤어졌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김씨잡변에 쓰는 게 맞을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건 시작이 어찌 되었든 결국 그 사람이 어떠한가에 달렸다.

 사용자의 생각 여부에 따라 틴더가 충분히 연애를 위한 만남을 갖기 위한 플랫폼이 될 수는 있다. 성적인 목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쌩굿난리를 치는 사람이 많다. 만나서 사귀고 결혼까지 가는 게 어려워 보이는 건, 그저 그 상대와 내가 맞지 않았을 뿐이지 틴더라서 라고 한정 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가볍게 시작하든 진중하게 시작하든 어떤 관계가 될지는 항상 나와 상대가 하기 나름 아닐까?

 아직 데이팅 어플 인식이 부정적인 이유는 다수의 사용자가 만남을 그만큼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 좀 제대로 인식하고 이야기한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막에서 바늘 찾는 수준이긴 해도 또 어찌 알겠는가, 사막을 걷는 와중 갑자기 마음에 박혀버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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