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거리는 약 2km 정도. 걸어서도 40분 남짓이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얘기하는 게 잘 맞는다면 동네 친구가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꽤나 집중해서 대화하려고 했다. 상대가 숨기는 게 많아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했으나, 조심스러운 성격이신가 보다 혹은 낯을 많이 가리시나 보다 하면서 말을 이었다.
다시 틴더를 설치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금세 질려 곧 탈퇴를 할 참이었다. 얘기를 계속할 생각이 있다면 연락처를 알려달라 하였더니, 그는 라인을 사용하자고 하였다. 새로 설치하고 해야 하니까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다른 것은 안 되냐 하니 결사반대를 하였다. 이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는 마음이 들지만 과거의 나는 아직 그래도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기에 귀찮아도 라인으로 대화를 넘겼다.
라인으로 넘어왔으니 그는 소원을 들어달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했다. 뭐라고 하나 들어나보자 하는 마음으로 물으니 집으로 놀러 오란다. 본인에 관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주면서 집은 알려준다니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이지 싶었다. 집에 가면 뭐하는데요 하는 말에 남녀 둘이서 할 수 있는 게 뭐겠어요, 키스도 안돼요? 섹스는요? 이런 소리를 하니 이 사람은 스크린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
"대화가 잘 맞지도 않는 것 같고, 본인 정보도 그렇게 숨기시고 하는데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잘 알지도 못하는데 키스니 섹스니 하는 얘기 하시는데 할 말이 없죠. 우리 그만 얘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라고 보낸 뒤 돌아온 상대의 대답에 멍하니 스크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시간 낭비했네, 앞으로 그렇게 사람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착한 척 가식 떨지 마시고요. 어플은 정상인이 없네 그냥 뒤져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읽고 대답하지 않으니 카카오톡 프로필을 찾아서 캡처를 해서 보내더라. 갑작스레 이 사람이 해코지를 하거나 하진 않을까 불안감이 왔다. 덧붙여서 온 메시지에 불안감은 불쌍함으로 바뀌게 되었지만.
"더러운 년, 섹스 얘기를 했는데도 계속 연락하다니. 한 번 먹고 싶었는데 뭔가 동남아 같아서 힘 빼기 싫어 그냥 질러봤는데 암묵적 동의를 하네."
참 불쌍한 사람이다. 사람을 대할 줄 모르니 곁에 있는 사람도 없겠지 싶었다. 저런 사고방식은 어떻게 해야 생길 수 있는 걸까? 섹스라는 단어를 얘기한 거 자체로 섹스를 하는 것에 동의라고 생각하다니. 저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집이나 숙박업소에 같이 갔다 강간을 당해도 그건 암묵적 동의다라고 할 사람인 것이겠지.
초면인 상대를 불쾌하게 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문맥을 읽지 못하고,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안 되면 온갖 떼를 쓰는 아이처럼 구는 성인 남자라니! 동남아 같아서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보면 확실하진 않아도 성매매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생긴 것도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문제없이 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어플에 정상인이 없다는 얘기는 본인을 두고 한 소리였을까? 저런 사람도 멀쩡히 취업을 하는데 하고 착잡함이 쌓이는 당시 취준생 김씨였다.
총 대화 시간이 세 시간이나 될까? 그 짧은 세 시간 안팎의 대화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뒤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소리까지 듣는 진귀한 경험을 어디 가서 하겠는가 틴더에서나 하겠지. 섹스에 암묵적인 동의란 건 없다. 뒤틀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랑은 엮이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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