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딜 그리 가는지 서울 나가려는 데 버스가 꽉 차, 눈 앞에서 두 대나 보내야 했고 어찌 더 이상 늦을 순 없어 탄 세 번째 버스도 만석이었다. 앞문 계단에 겨우 올라타 신도림으로 넘어가는데 도로에서도 도무지 머스는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이미 늦었구나 슬퍼하는 데 날이 너무도 화창했다. 이제는 중립적인 의미지만 나에겐 아직도 부정의 의미가 담겨있는 너무라는 부사가 어울리는 날이었다. 눈부신 햇빛도 따스한 햇살도 그걸 상회하는 찬 바람도 모두 어우러져 걷기 좋은 날씨였다. 늦어서 미안함에 뭐라도 하려 했지만 뭘 할 수가 없었다. 사실 내 마음은 이리도 좋은 날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질 않은데, 너 따위가 뭔 상관이냐 하듯 너무도 좋은 날이었다.
광화문이니 서촌이니 북촌이니 경복궁이니 하는 곳들을 골목골목 돌았다. 어딜 가든 사람들이 북적거려 가려던 디뮤지엄 박물관도 창덕궁도 가지 못했지만 같이 돌아다니는 것 자체로 즐거웠다. 여기가 아닌가 봐! 여기로 가면 안 되나 봐~ 이 길이 아닌데? 결국 맘 이끌리는 데로 몸을 보냈다. 숨겨져 있지도 않았지만 우연찮게 좋은 장소들을 찾으며 꺄르르 웃었다. 넘치는 연인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다른 수많은 관계들 사이에 나와 다은이는 그렇게 그 사람들보다 더 친밀한 미세먼지를 뚫고 헤맸다. 코가 칼칼하고 목이 텁텁해질 때 즈음 성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고, 엽서 얘기를 시작했다.
어찌보면 오늘은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오늘이 또 갔다. 수많은 관계들 사이에서 혼자 아닌 혼자였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있는 그대로 마음 가는 대로 즐겼다. 어디 방향이 제시되어서 딱딱 잘 찾아 나아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렇게나 즐거운 걸! 헤매니까 더 좋은 거다. 그래야 숨은 의미를 찾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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