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다시금 왜 나는 그에게 내 일상을 나누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스쳤고, 동시에 명확한 답을 얻었다. 이런 곳을 좋아한다 가고 싶다고 직접 공유하는 것들도 기억 못 하는데, 일상 이야기는 당연히 바람에 날리는 모래알처럼 다 흩어질 정보라는 걸 알기에 애초에 공유하지 않는 것이었다. 아마 슬프게도 우리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아직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조금 더 신경 써주길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나 보다.
"힘든 일 있으면 말해."
그와 아무리 매일 얘기를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건 쌓이거나 사이가 두터워지는 대화가 아니라 그냥 뱉고 있는 말인데 최근에 힘들긴 했나 보다. 아무리 힘들 때 곁에 있어줄 거라고 해도 그저 입에 발린 말이고, 내가 힘들 때 절대 그는 날 위해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데도 잠시 헷갈렸나 보다. 어느 한순간이라도 나를 조금 더 높은 우선순위에 놓아준 적이 있었다면, 모른 척 다시 믿어보려고 할 수도 있겠다만, 그간 친밀하게 있는 와중에도 한 번을 그런 적이 없는데, 글쎄. 그 모든 게 그저 말로만 뱉는 걸 알면서도 기댈뻔했다. 먼저 생각해준 적이 여즉 없는데 앞으로도 당연히 없겠지 싶다. 나는 그의 소중한 사람의 목록에 들어간 적이 없고,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리워한 적이라도, 보고 싶어 한 적이라도 있는가, 표현한 적이라도 있는가 모르겠다. 나름의 방식으로 생각을 해주기는 하다만, 본인이 한 말과는 다르게 그 섬세함의 정도가 나의 것과 너무도 차이가 난다. 그럼 그동안 나랑 얘기한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고 대하는 그 사람은 누군데 싶어지는 것이다. 본인이 이전엔 애인을 우선순위로 두면서 생활했다는 게 진실일지 모르겠다. 예전엔 믿었는데, 더 이상은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애인이 아니었기 때문 일 수도 있겠다만, 애인으로 규정을 했던 그 찰나의 순간에도 딱히 그는 노력하지 않았으니. 나와 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저 나의 다정을 이용할 뿐이라 많이 실망했다. 신뢰가 무너진 관계가 잘 굴러갈 리가 없지.
그는 나를 너무 모르고, 알 생각도 없고, 궁금해하지도 않는 듯 하다. 가끔 나의 얘기를 물어볼 때면 웬일이래 싶어지는 게 항상 자기 얘기뿐 나를 궁금해한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듣는 걸 좋아하지만 얘기하는 것도 좋아하기에 만약 내 일상을 물었본다면 나는 언제든 조잘조잘 대답했을 것이다. 그 숱한 시간 동안 나를 궁금해한 적이 별로 없으니까 항상 웬일이래 싶어지는 것이겠지.
관심과 애정, 관계의 거리감 사이를 조절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거 같다. 멀쩡하게 누굴 좋아하고 사랑하고 하는 일이 생에 한 번은 일어났으면.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는 게 어떤 감정일까?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하는 시작점은 호기심이고 적어도 나를 궁금해 하는 사람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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