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실망을 지나 두려움을 건너 이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늘 같던 존재들이 똑같이 그저 한 명의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거대하던 모습이 점점 작아지는 것을 마주하며, 결국 나도 시간을 피할 순 없다는 걸 머리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과정인 게 아닐까 싶다.
"아빠는 뭐든지 될 수 있어!"
조카의 말에 갑자기 울컥 눈시울이 아렸다. 그치 나도 저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지. 저 말을 듣는 오빠는 얼마나 행복할까? 또 동시에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지도 모르고, 지금의 나로선 알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겠지. 어린 날의 나에게 부모님은 뭐든지 할 줄 아는 만능 재주꾼에, 무엇이든 답을 아는 척척박사였다. 생각해 보면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어릴 때 오빠와 나를 낳아 기르셨고, 나는 아직도 이렇게 어리숙하고 서투르고 모자란 사람이니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라고 달랐을까.
척척 해내는 슈퍼맨도 거대한 산 같던 모습도 일부는 맞을 수 있지만, 다 물리적으로도 작고 살아간다는 것의 경험이 적었던 어린이가 만들어낸 허상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지나며 엄마 아빠도 경험이 쌓이고 겨우 어른의 틀을 갖췄을 것이고, 자신의 무력함도 부족함도 받아들이며 삶을 키워갔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도 더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자신을 찾는 일이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거대하게 우뚝 서 있던 부모님의 모습에서 점차 사람으로서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골리앗이 그저 별 거 없는 초라한 개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마음이 썩 편하지는 않았다. 머리로는 알아도, 나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보는 건 살짝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어른이라는 건 결국 우상의 허상을 걷어내고 실재를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졌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의 온 세상이었고, 성장하며 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정도의 나이가 되도록 온실에서 스스로를 지키며 조금은 게으르게, 조금은 순진하게 어리석음과 순수함을 지키고 있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나의 취향을 쌓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아가는 데에는 환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동시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도 안전한 환경 덕이었다.
여전히 부모님의 작아진 모습은 적응되지 않지만, 당신들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작고 대단할 것을 이룬 게 없는 소시민으로서 정착한 삶이나, 나의 부모님의 자랑이었으면 하면서 부모님이 목 뻣뻣하게 다녔으면 하는 모순적인 바람을 가지고 있다.
나의 슈퍼맨이었고, 우상이었고, 모든 것이었던 당신들에게 사랑을 담아, '안녕히'라는 묘한 인사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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