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잡변/틴더_사용보고서_ver.0.7

기억이 끊긴 건

소시민김씨 2023. 6. 6.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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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마약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는데, 남녀가 노출되는 마약이 다르다는 소리에 한 차례 '엥?' 하였다. 기사를 읽어보니 자발적으로 마약을 접한 게 아니라 강제로 투여되어 중독된 사례의 차이 때문이었는데, 이거 참. 한 금수를 만났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낯선 이와 처음 만날 때, 절대 술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게 한 그 기억 말이다.

 별로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으나, 크게 나쁜 얘기를 하지 않고 멀쩡해 보여서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하는 만날 약속을 잡았다. 약속 당일, 어째선지 생리가 터져버렸다. 첫 만남인데 당일 파투는 아닌 거 같아서 생리 첫날의 거지 같은 컨디션으로 정신줄을 꼬옥 잡으며 약속 장소에 갔다. 종로에서 만난 그는 제주 흑돼지를 먹으니까 맞춰서 한라산 소주를 마시자고 했다. 술을 잘하지는 않지만, 몸 상태를 잘 알면서 마시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술을 마시는 속도는 굉장히 빨랐고, 나의 속도와는 맞지 않았다. 그가 재촉해서 술을 마시는 게 빨라지기도 했으나 전반적인 술을 마시는 속도가 어땠는지 기억은 안 난다. 아 더 마시면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 마시기 시작했다. 몸이 안 좋다 보니 평소랑 비슷하게 마셨지만 몸이 받아들이기로는 아마 정도 이상의 술을 마신 게 아닐까 싶다.

 그렇게 문득 정신을 차리니 어느 모텔방에 혼자 누워있었다. 스타킹은 벗겨진 채, 속옷은 입은 상태였다. 벗기고 보니 생리 중이라 못 한 건가, 안 한 건가, 아니면 대체 뭘까. 시도는 한 거 같아 보이는 핏빛 휴지가 보였다. 개자식이. 술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렇게 기억이 끊긴 일은 처음이었다. 술이었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였든, 그날의 뚝 끊긴 기억은 영 찝찝할 따름이다. 메시지로 그는 먼저 간다는 얘길 남기긴 했더라. 부모님의 잔뜩 화가 난 부재중 전화를 보며, 여러모로 거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남긴 같잖은 메시지에 '혹시 약 같은 거 탔나요?' 했던 젊은 날이여. 당연하게도 씹혔던가 읽히지 않았던가 했다. 그 이후 연락이 닿질 않았으니 어째 확인할 길은 없다.

 얼마 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술에 만취한, 혹은 다른 이유로 인하여 인사불성이 된 여성을 골뱅이라고 칭한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섹스가 일종의 대화라고 생각하여 '상대'가 존재해야 한다 여기는 나와 다르게, 일부 남성들에겐 혼자 할 수 있는 행위인가 보더라. 애초에 의식 없는 상대를 데리고 하는 섹스는 강간이고 범죄인데 말이다.

 몇 달 후 한 프로그램에서 아만다라는 어플이 유명해지는 일이 있었고, 뭔가 다른가 하고 설치했다가 평균 4점으로 떠 있는 그를 보면서 아하 아주 잘 먹고 잘 사는 중인 거 같구먼, 하는 일 하나하나 미묘하게 잘 안 굴러가길 잠시 빌어주고 아만다 어플을 지웠다. 사람 점수 매기는 것도 별론데, 금수가 인간인 마냥 좋게 평가받고 있는 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을 찾으면 참 좋겠지만, 애초에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연락이 닿을 수 없는 그쪽 금수분께서는 이후에도 반복된 행동을 했을 테니 누가 누군지 기억도 구분도 못하겠지.

 다시금 강조하지만, 동의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고 강간은 범죄입니다.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섹스는 상대의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강간입니다. 원나잇이든 뭐든 하고 싶어 할 수 있겠다만, 자고 싶게 분위기를 조성하고 합의와 동의를 구할 줄 알아야지, 그런 구슬리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상대를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강간하는 범죄를 저지르진 맙시다. 즐긴다니 뭐니 하고 싶으면 인간으로서 즐기고 금수가 되진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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