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루리
ㅁ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ㅁ 2020
ㅁ 비룡소
아동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다양한 책을 접했고, 그림책이라는 분야가 깊다는 걸 조금이나마 배웠다. 그 배경을 잊고 있었는데, 한동안은 글자조차 읽을 수 없어서 그림책이라는 분야에 눈이 많이 갔다. 루리 작가의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는 황금 도깨비상 수상작이라는 글자가 아른거려 계속 장바구니에 두었던 작품이다. 글자를 읽는 게 힘든 어느 날 문득 결제를 해버렸고, 5분도 안 되어 다 읽어버린 책은 생각 타래를 만들어줬다.
그림책은 책이지만 그림이고 그림이지만 책이라서, 그림에 집중하여 읽을 수도 있고, 글에 집중하여 읽을 수도 있다는 매력이 있다. 브레멘 음악대를 모티프라고 할지 오마주라고 할지 발전시켰다 할지, 학식이 부족하여 정확하게 얘기할 순 없지만 이 책의 매력은 이야기와 어우러진 그림일 것이다.
간결해 보이는 선 사이에 숨은 섬세한 묘사가, 짧고 단순하지만 속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다. 내일 당장 어떻게 하지 싶은 상황에서, 어찌 보면 유일하게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따뜻하게 밥을 해 먹는 마지막. 밥에 진심인 우리나라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왠지 더 따스하게 다가왔다.
정작 끼니라고는 잘 챙겨 먹지 않는 사람이지만, 마음이 시릴 때 잘 먹는 밥 한 끼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속이 허하고 막막할 때면 따끈하게 혹은 정성스레 차린 음식을 몸에 넣어줘야 한다. 힘을 내기 위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기도 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다. 다각 다각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재료가 음식으로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날 것의 향에서 맛있는 음식의 냄새로 바뀌어가는 걸 느끼고, 먹어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미각까지 자극할 수 있다.
문득 요리를 하고 먹는 행위에 집중하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다. 그렇게나 어두워보여도, 도망치고 싶고, 두렵기만 한 앞날인데도, 또 이렇게 살아있구나. 좋아하는 음식을 허한 몸에 밀어 넣는다. 어떻게든 살아갈 순 있겠지, 희망도 한 입 먹어본다. 일상의 참 작은 부분인데, 하나하나 집중해보면 내 몸이 살아는 있구나 싶어 진다.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일을 살아갈 힘을 다 같이 만들어냈다. 혼자였으면 그 재료들은 김치찌개가 될 수 없었다. 그날 우연히 같이 있었을 뿐이겠지만, 그래도 서로가 모자란 부분을 채워서 함께 나아갈 힘을 만들어냈다. 혼자선 살아갈 수 없는 우리를 엿볼 수 있었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갉작갉작 생각이 피어나는 책이었다. 어느 날인가 잊어버릴 거라는 걸 알지만, 이 감각을 계속 마음에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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